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을 8주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"그런데 이게 나한테는…"이었습니다. 4회차 우정론 토론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. 쾌락의 친구, 유용함의 친구, 덕의 친구로 나누는 분류가 처음엔 너무 냉정해 보였는데, 이야기하다 보니 각자 관계에서 어느 쪽이 더 솔직한지 보이게 됐습니다. 서지연 님의 학술적 설명 덕분에 텍스트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었고, 장소영 님이 현실 사례를 가져와서 이야기가 땅에 발을 붙이게 됐습니다. 좋은 구성이었어요. 에우다이모니아 — 행복이 아니라 번영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. 행복은 상태인데, 에우다이모니아는 활동이니까.
에우다이모니아 번역 논쟁은 저도 논문에서 한 챕터를 썼을 정도로 복잡한 주제입니다. "번영"이 활동성을 잘 담는다는 데 동의합니다. 사실 영어 "flourishing"이 제일 가깝다고 생각해요.
4회차 우정론이 저한테도 오래 남았습니다. 업무 관계가 "유용함의 친구"인 게 나쁜 건 아니라는 걸 아리스토텔레스 덕에 인정할 수 있게 됐어요. 그 안에서도 진심이 있을 수 있으니까.
에우다이모니아를 "번영"으로 보면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개념이 된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.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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